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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친일파 열전/이완용, 박정희 등 친일 이유와 그들을 청산 못한 이유

by 책의비밀 2021. 12. 14.

 

친일을 왜 했을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친일 인물들을 청산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알려 주지는 않았지만 저는 친일파 인물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해 볼까 합니다. 작가 박시백씨는 요즘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또는 외교적 충돌을 겪을 때마다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일본 측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만큼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다 가고 주류 매체들까지 은연중에 같은 입장을 내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분개에 동조하는 듯한 기묘한 상황이 많다고 합니다. 여전히 친일파는 청산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당사자들은 이미 수명을 다해 사라졌지만 그들의 혈연적, 사상적 후예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혐한 코드가 가장 잘 팔리는 문화상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각종 TV프로그램과 시사 코너, 토크쇼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은 끝없이 거짓말을 하고 떼쓰기만 하는 상대'의 선동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저자는 친일파의 역사를 소개하고 시기별, 부문별 대표적인 친일파를 소개 하였습니다.

이 책은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 과거의 친일을 했던 인물들을 기록한 '만화 기록서 (만화책)'입니다.

이 사람들의 행적이 잊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작성된 책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저는 여기서 소개된 인물들을 읽고 나서 이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왜 친일을 했을까요?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시작은 일본과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 방식은 공부를 일본에서 했거나

우연히 일본인 또는 일본 문화와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교류를 이용해 학습을 했습니다.

러일 전쟁에서 통역일을 하거나

일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보다

외부 교육도 많이 받고

상하이,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등의

외부 경험이 많은

'엘리트'들이 친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글로 기고를 하거나,

음악, 예술, 그리고 종교등 다방면에서 

자신의 재량을 펼질 수 있는 곳이라면 

자신의 재능으로 일제를

찬양하거나 지지했습니다.

 

 출중한 사람들은 주요 관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드는 생각은 그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칠 기회를 엿봤다는 점입니다.

 

일본에게 그 이익을 요구했고

자신의 명성을 떨칠 기회를 항상 찾았습니다.

 

표면적으로 친일이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 나라를

기회로 삼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을까요?

 

제 첫번째 의문과 유사하지만

이해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을 이용해 권력을 얻을 수 있었고

친일을 이용해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후 나라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만약 지금 우리가 전쟁을 하였고

미국 또는 중국에 속국이 된다고 한다면

과연 지금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람만 있을까요?

 

저는 지금 역시 현 상황을 기회로 삼아 누군가는

국민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할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가치나

삶의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친일을 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우리는 유사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친일의 주요 인물들 몇 사람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고 부록에는 각 인물들에 대한 그들의

행적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완용 : 매국노의 대명사

 

그는 1886년 육영공원에 개설되자 영어를 배우고 이듬해 미국참사관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1894년 김흥집 내각에서 외부협판, 이듬해인 학부대신에 임명되면서

고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공금 유용 혐의로 면직이 되었으나 1905년 다시 학부대신이 되며 을사조약 체결에 공을 세우면서

이토 히로부미의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1907년 총리 대신이 되어 고종의 양위와 정미칠조약, 군대해산 조치 등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한일 병합 이후에는 그간 친일 행적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1912년에 중추윈 부의장으로 죽는 날까지

유임했고 작위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완용은 말명에 이재명에게 피습당한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69세가 되는 192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부자였고 지위가 높았던 만큼 장례식은 성대했으며 일본 정부는 대훈위국화대수장을 수여해 그를 빛냈지만

당대에도 매국노란 오명을 불렸고 동아일보는 부고 기사로 그를 조롱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 대한민국 전 대통령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보통학교 훈도로 일하다가. 신징군관학교에 지원했다가 탈락했다고 합니다.

 

이후 1942년 우등생으로 만주국 황제 푸이가 하사하는 금장 시계를 받고 일본 육사 본과에 편입해 졸업했다고 합니다. 1944년 12월 일본군 소위에서 만주군 보병 소위로 소속이 바뀌어 팔로군을 상대하는 부대에 있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숙군 작업 당시 김창룡에게 프락치 혐의로 체포되었고

 

군대 내 남로당원들의 명단을 제공한 대가로 사형을 면했다고 합니다.

 

군에 복귀했고 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 11월에 준장을 달았다고 합니다.

 

1961년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고 1979년 최후를 맞을 때까지 그의 개인사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공간을 차지했습니다.

 

 

송병준 : 이완용에 밀릴것 없는 친일 매국노

 

무과에 급제해 수문장으로 시작한 그는 강화도조약 당시 일본 측 일행을 맺는 수행원을 맡아

일본과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0여년간 머물며

일본의 정치인, 군인, 망명과들과 교제했다고 합니다. 이완용 내각에서 농상고부대신을 맡아

정미칠조약, 고종 하야 등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일진회 총재로 한일병합운동을 주도했으며

병합 후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무총감이 되기 위해 일본 정계에 적극 로비하고 북해도를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합니다.

 

1925년 그가 죽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추도식이 열렸다니 그의 위상이 짐작됩니다.

 

 

 

조중응 : 정미칠절, 경술국적으로 이름을 올린 자

 

아관파천 뒤 명성황후 시해에 관여했단 혐의로 일본으로 망명하고 10년간

일본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한국 부인이 있었는데도 일본 여인과 결혼을 했고 1907년 이완용 내각에서

법부대신을 맡으며 병합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병합 이후에도 기고 등을 통해

총독부 통치를 찬양하였다고 합니다.

 

 

윤덕영 : 경술국적으로 자작을 받은 자

 

한일합병조약에 조카인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숨겨 거부하려 하자 협박해

빼앗은 장본인이라고 합니다.

 

1917년 순종이 천황을 알현하는

일을 주선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의 아방궁이라고 불렸던

벽수산장 양관을 지었으며

 

말년에는 경학원 대제학 겸

명륜학원의 총재, 조선유도연합회 회장,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이원,

중추원 부의장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이용구 : 친일의 재야의 인물

 

최시형의 제자 그룹에서 동학농민전쟁에서

지도자를 활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병희의 홤께 일본으로 망명했고 손병희의 지령을 받고 국내로 들어와 동학교도를 규합하여 진보회를 조직했다고 합니다.

 

이어 송병준의 일진회와 합병해

일진회 총회장으로 취임했다고 합니다.

 

시천교를 창설해 스스로 교주가 되고 일진회와 시천교를 통해 맹렬한 친일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한일 병합 뒤 작위도 받지 못했고 일진회 해산 명령만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으로 도망갔고 병석에 누위 2년 뒤 지난날을 후회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책의비밀 - "친일파 열전"을 리뷰/서평/감상/요약으로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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