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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기묘한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모나리자 등 화가와 명화의 이야기

by 책의비밀 2021. 12. 10.

 

저는 매번 반 고흐 미술관이나 반 고흐 박물관에 가기 전에 인터넷에 그의 작품을 한 번씩 보고 가곤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며 박물관에 가게 되어도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더라도 딱딱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미술이 소설보다 재미있을 수 있을까요? 만약 작품과 화가에 대한 의도와 뒷배경을 알게 된다면 그 작품을 조금 더 깊게 알 수 있지 않을까요? 13년 동안 파리에 살면서 1000번 넘게 미술관에 방문하고 작품을 수백 번은 보고 설명한 진병관 씨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를 모아 한자리에 전시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유명한 작품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찾고 미술사, 작품의 사조와 화풍뿐 아니라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우주를 표현했는지 중점을 두고 썼다고 합니다. 대중적인 시선으로 저에게 가장 익숙하거나 흥미로웠던 작품 4개를 선택하여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에는 책에 소개한 작품들의 이름을 나열하였습니다. 보다 알고 싶은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그러면 한번 이 책에서 소개한

작품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70일

 

화랑에서 그림을 파는 일도, 목사가 되려는 일도 모두 실패한 고흐는 27세인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들어섰다고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갱과 함께 했지만 둘의 예술의 견해가 달랐다고 합니다.

논쟁은 다툼으로 이어지고 결국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으로 관계는 파탄 납니다.

 

이후 발작 증상이 심해진 고흐는 생 레미의 요양원에서 자신을 스스로 가둡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병원 창밖으로 바라본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빛나는 밤'을 완성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고흐

 

1년 뒤 그는 동생 테오의 권유로 다시 파리로 돌아갑니다. 그 후 파리에서 북서쪽에서 약 30km 떨어진 작은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떠납니다.

 

고흐를 돌봐줄 정신과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가

폴 가셰 박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70일간 '까마귀 나는 밀밭', '오베르의 교회', '가셰 박사의 초상'등 70점이

넘는 명작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총상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고흐는 자신의 심장 근처의 상처를 보여주며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열로 시달린 그는 치료를 원하지 않고 이틀 뒤 37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고흐의 사망은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그가 자살의 이유를 찾기 어렵고 정신 병력이 있었기에 총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타살설로는 고흐가 까마귀를 잡으려던 두 소년에게 우발적으로 맞았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2018년 루브르 박물관은 관람객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박물관임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그중 70%는 모나리자를 만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고 합니다. 여름휴가 때는 짧게는 15분 길게는 40분이 걸리지만 그녀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는 원래부터 유명했을까요? 답은 아니라고 합니다. 1911년 8월 22일 화가 루이 베루는 정기 휴무가 끝난 후 다시 문을 연 루브르 방물관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음 작품을 그리기 위해 모나리를 모사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의 전시 장소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비원에게 물어보자, 아마도 사진 촬영을 위해 작업장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베루는 그제야 박물관 어디에도 모나리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은 프랑스 언론뿐 아니라 바다 건너 미국 신문의 헤드라인까지 장식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박물관의 모든 관계자를 조사했지만 용의자를 찾지 못했고 모나리자는 원하지도 않은 노이즈 마케팅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빈치

 

2년이 지난 후 1913년 범인인 빈센초 페루자가 검거되는데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리를 교체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에도 의심받지 않고 작품을 떼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1년 14일의 형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도난 사건에 색다른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페루자 이외의 사건의 배후가 있어 그 사람이 페루자를 기용해 훔치게 한 후 백만장자에게 위조품을 진품으로 속여 팔았다는 내용입니다. (페루자는 끝까지 배후를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56년에는 한 관람객이 염산을 뿌리기도 했고 같은 해 볼리비아 출신 청년이 해고 분풀이로 모나리자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여러 사건이 있었음에도 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는 다빈치가 동시대의 어떤 화가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모나리에자에게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윤곽선을 뭉개는 방식으로 색과 색 사이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했다고 합니다. 그가 도입한 스푸마토라고 부르는 기법은 모나리자의 미소가 모호하고 신비롭게 느껴지게 한다고 합니다.

 

또한 선 원근법이 아닌 인간의 눈이 먼 풍경을 볼 때 푸르스름하게 보는 것과 비슷하게 대기 원근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 초상화에서 정면이나 측면을 그리던 것과 다르게 몸은 측면, 시선은 정면으로 향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그렸다고 합니다.

 

편안하게 자세를 취한 그녀는 그림을 마주 보는 이를 보며 웃는다고 합니다. 모나리자가 그려지기 전에는 어떠한 초상화도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 지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집착한 예술 작품 :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20세기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개인 소장품, 공적 기관의 소장품 등

총 65만 점을 훔친 도둑이 있다고 합니다.

 

아돌프 히틀러라고 합니다. 그는 왜 그토록 예술 작품에 집착했을까요?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에 패배를 경험한 후 정치 활동을 결심하고 어릴 적 꿈이었던

예술에 대한 열망을 정치에 이용했다고 합니다.

 

독일인의 인종적 우월감을 고취하는 데 예술을 이용해 고대 그리그 소마 미술이 유대인의 영향에서

벗어난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미술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반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칸딘스키, 피카소, 샤갈, 뭉크 마티스 등의 작품을 퇴폐 예술이라고 칭하고 퇴폐 미술전을 열어 조롱했다고 합니다.

 

그가 좋아한 화가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라고 합니다. 그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를 오스트리아의 주인에게 반강제로 구입해 소유하였다고 합니다.

 

회화의 기술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책에서는 이 그림이 없어서 제가 찾아서 넣었습니다. 설명하는 바와 이 그림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인은 월계관을 쓰고 트럼펫과 책을 들고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화가는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붓을 들고 모델을 바라본다.')

 

위 그림은 화가 페르메이르가 끝가지 지키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소박한 주제에 크기도 50cm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 작품은 특이하게도 크기가 100cm고 일상이 아니라 화가가 그리는 모습을 담았다고 합니다.

 

작품 속 화가가 그리고 있는 모델은 단순한 여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녀는 월계관, 트럼펫, 책은 그리스 신화의 아홉 무사이 중 역사의 여신 클리오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페르메이르는 무사이 클리오를 그리며 화가가 역사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화가는 역사화 같이 고상한 주제를 그릴 수 있으며 네덜란드의 역사도 잘 아는 지적인 화가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화가의 복장 또한 낡은 작업복이 아닌 당시 유행한 절개선이 많은 겉옷과 붉은색 내의를 입은 모습으로 그려 화가로서의 자부심과 명성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사망 당시 빚이 많았으나 이 작품만은 부인이 끝가지 소유하려다가 결국 경매에 나왔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200년 넘게 인정받지 못한 페르메이르의 이야기를 통해 미술 학교에 낙방하여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역사의 중요성을 다룬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를 통해 독일 민족정신과 역사를 강조하는 자신의 모습을 동일시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 이삭 줍는 여인들

 

장 프랑수아 밀레는 노르망디 시골 출신으로 파리에서 초상화가로 활동했지만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른 중반

즈음 파리 근교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자연 풍경을 그리는 동료 화가들이 모여 살며 바르비종 화파를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하지만 풍경보다 '이삭 줍는 여인들', '씨 뿌리는 사람'등과 같이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농민들의 삶을 즐겨 그렸다고 합니다.

 

이삭줍는여인들
이삭 줍는 여인들 / 장 프랑수아 밀레

 

정기적으로 화가들의 등용문인 살롱전에 출품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은 세 여인이 허리를 굽혀 낟알을 줍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인들 뒤에 말을 타고 있는 이가 주인이라고 합니다. 여인들은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수확한 후 떨어진 낟알을 줍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농민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역사화를 그리려 한 것도, 사회 비판적 그림을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저 그가 평생 본 들판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경건하게 그렸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 외 책에서 소개한 작품의 이름들

 

뱀을 부리는 주술사, 꽃이 있는 정물화, 올랭피아, 벨렐리 가족의 초상,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 삼등 열차, 아시시에서 성흔을 받는 성 프란체스코,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화, 도살된 소,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 아테네 학당, 까마귀 나는 밀밭, 메두사호의 뗏목, 안토니아타 곤살부스의 초상화, 죽기 하루 전날의 발렌틴, 자기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시녀들, 쾌락의 정원, 대사들, 성 세바스티아누스

 

 


책의비밀 - "기묘한 미술관"을 리뷰/서평/감상/요약으로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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